교수사회 고령화

5월 13일자 연합뉴스에서 "교수사회 고령화 심화…60대 이상이 30대 이하의 2배"라는 기사를 냈다. 기사가 던지는 주장이 상식적 판단과 크게 배치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기사에서 근거로 제시한 전임교원별 연령별 비율에 대해서는 해석이 아쉽다.

인구 피라미드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웠던 걸로 기억하는데, 연령대별로 남여 인구를 그린 피라미드 형태의 그래프을 떠올려보자. 우리나라를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와 베이비붐 자식 세대인 2차 베이붐 세대가 있었고, 최근 30년간은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겪으면서, 피라미드 모양이었던 우리나라 인구구조는 버섯형태로 바뀌어 갔다. 고령화는 이러한 인구구조의 변화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가정 하나: 신규 임용 교원수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가정을 하나해야겠다. 학생수가 줄어듦에 따라 대학도 통폐합되고, 그에 따라 교수 수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하지만 기 임용된 교수가 해직되지는 않을 것이며, 처우가 열악해질 지언정 전체 신규 채용 인원수는 한동안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일단 오늘의 이야기는 이러한 전제를 두고 진행하겠다.

전연령 은퇴율(사망율)이 0에 가깝지만 은퇴연령이 되면 모두 은퇴(사망)한다

교수사회의 독특한 점은 대부분 은퇴연령이 보장되고, 65세인 은퇴연령이 되면 일시에 은퇴한다. 이상적인 상태를 가정해보면, 모든 교수가 30대(40세가 되기전)에 임용되고, 모든 연령에 동일한 인력이 채용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30대인 교수가 1/6, 40-44, 45-49, 50-54, 55-59, 60대가 각각 1/6씩이 된다. 조금 더 엄밀하게 따지면, 60대는 60-65세이므로, 앞서 제시한 연령구분에 따라 60대를 제외한 모든 연령층은 16.1%, 60대는 19.4%가 된다. 기사에서 제시한 연령층으로 구분하면, 30대 16.1%, 40대, 50대는 32.2%, 60대는 19.4%가 되는 것이다.

자 이렇게 보면, 2012-2016년 사이 60대 전임교원 비율이 11.9%에서 18.5%로 증가하는 것이 고령화의 중요한 지표이고, 큰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상태를 가정했을 때보다 60대 비율이 적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점이 불편했다. 물론 50대의 비율이 이상적인 상태에 비해 6%p 가량 높고, 30대는 7%p 가량이 낮은 점은 고령화를 우려할 만한 지표가 된다. 50대는 향후 15년간 60대 비율 증가에 기여할 것이고, 30대의 낮은 비율은 고령화 비율 지표를 악화시킬 것이다. 유입인구가 줄어들게 되어 전체 인구수가 줄어들고, 이에 따라 비율 불균형을 더 키우게 된다. 전체 인구수가 일정하다면, 신임 교원의 일정 비율은 40대 이후에 최초 임용됨을 의미하며, 이는 30대 비율은 낮추고, 다른 모든 연령층의 비율을 동일하게 높이게 되는 효과가 될 것이다.

그래서 고령화는 문제인가, 아닌가

기사에서 제시한 작금의 현실은 분명 문제이다. 기사에서 "30대 이하 교수는 1인당 연구비가 2016년 2천697만원으로 전체 평균(5천701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쳤지만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국제전문학술지에 실린 논문 수는 1인당 0.48편으로 평균(0.39편)의 123%에 달했다. 60대 이상은 1인당 연구비가 4천440만원으로 30대 이하의 1.6배였지만 SCI급 논문 수는 0.25편으로 30대 이하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라고 자료를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건 고령화가 원인이 아니다. 이러한 통계와 고령화라는 구조가 합쳐서 전체 교수사회의 효율성 (연구비 대비 SCI논문수) 저하를 우려하는 것이라면, 이것 역시 반만 맞다고 하겠다.

연구 역량은 단순히 SCI논문 수로 계량되지 않는다. 측정 지표가 주어지고, 거기에 인센티브가 주어지면 영향을 받는 집단은 그 지표에 적응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교육 문제를 언급하면서, 고등학교까지는 수학, 과학 시험성적이 세계 최고 수준이나, 대학 이후 성인 연령층에서는 급격히 순위가 떨어지는 현상도 동일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수능이라는 인생을 좌우할 시험이 있고, 우리나라 교육은 12년을 그 시험에 맞추어 계량화된다. 하지만 수능 시험 이후, 수학, 과학은 더 이상 인생에 중요하지 않으며, 계량되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SCI논문 수는 객관적으로 측정가능한 지표이지만, 연구역량과 비례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총 논문 게재 수가 늘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교수 임용 과정에서 SCI 논문 수는 중요한 채용 기준이 되므로, 30대 연구자는 SCI 논문 수로 평가 받는다. 임용 이후에도,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하기 위하여 SCI 논문 수가 활용되며, 상대적으로 연구경력 (연구과제 수행경력)이 적은 젊은 교수는 SCI 논문 수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해야 한다. 반면 정교수가 되어 정년을 보장받는 40대 후반, 혹은 50대 초반이 되면, 더 이상 SCI 논문 수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아니다. 연구 과제를 수주하기 위해서도 그동안 수행한 연구과제 수행실적이 더 중요한 평가기준이 된다. 연구비를 집행하는 지원기관 입장에서도 관련 연구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30, 40대 교수에게는 적은 비용으로 이것저것 시도해보게 되고, 50대 이상 교수에게는 중견연구자라는 타이틀과 함께 연구비가 큰 과제를 맡기게 된다.

즉 경력에 비례하여 연구비가 증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SCI 논문 수는 신임교수에게는 가장 중요한 평가 수단인 반면, 정년을 보장받은 정교수에게는 주요한 평가 기준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기사에서 제시한 기준만으로는 고령화가 문제라고 단정하기가 어렵다. 물론 젊은 교수는 열정적으로 과제도 하고, 수업준비도 하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노교수는 수업도 10년전에 만든 자료를 쓰고, 연구도 거의 하지 않는 이미지를 상상하기 쉽지만, 기사에서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이러한 상상을 뒷받침하기 어렵다.

만약 정말 이러한 지표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모든 교수들에게 SCI 논문 수로 연간 평가하겠다고 교육부에서 강제지침을 하달하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나는 불과 2-3년 내에 정교수의 SCI 논문 게재 수가 신임 교수 이상으로 높아질 것으로 확신한다. 신임 교수는 SCI 논문 게재를 위해서는 스스로 해당 논문을 써야 한다. 하지만 50대 이상 교수에게는 SCI논문을 대신/같이 써 줄 제자 교수가 여럿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 대안은

결국은 직업의 안정성과 다양성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추상적인 대안으로 끝맺음하고 싶지는 않지만, 무엇을 위해 연구하는 지를 잘 생각해보아야 한다. 교수라는 직종은 주도적으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고, 정년이 보장됨에 따라 안정적으로 장기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수가 되고 싶은, 혹은 교수가 된 사람은 연구를 위해서 그 직종을 선택하였을까?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를 꾸준히 해서 교수가 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박사후 연구원이라는 계약직 상태가 되는데, 고용주인 교수 혹은 연구기관의 수행과제에 종속되어 독립적인 연구 수행이 매우 제한된다. 30대 초반에 임용이 된 사람이라면, 박사학위 취득, 그 후 1-3년 정도의 박사후 연구원을 통한 수련 기간, 임용 후 자신의 연구분야 개척이라는 모범적인 커리어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30대 후반, 혹은 40대 초반에 임용되었다면, 박사 후 연구원, 혹은 다른 연구 경력 기간이 길어지면서, 박사 연구주제와 최근 수행한 연구과제가 다를 확률이 매우 높다. 다르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타성에 젖을 가능성이 높아짐을 부인하기 어렵다. 연구자가 주도적이고 도전적인 과제보다는 현실적이고, 연구과제 수주가 수월한 주제에 천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사 후 연구원 혹은 연구직이라는 직업군이 무기 계약직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직업군이 되어, 연구자가 독립적인 연구주제 발굴 및 장기계획 수립이 가능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또한 교수직이 갖는 과도한 특권적 지위가 분산되거나 사회적으로 조정될 필요가 있어보인다. 교수라는 직업군이 학자(연구자)로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교육자로서는 학점, 학위와 같은 절대적 우위을 바탕으로 학생 위에 군림하는 세태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교수라는 직군이 갖는 사회적 지워, 혹은 행정적 지위는 사회, 대학사회에서 막강하기 때문에 사회적 성공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수의 본분을 교육, 연구, 행정으로 나누곤 하는데, 이러한 역할을 기대하면서, 임용 시에 논문 수로 단순 평가하거나, 소수 평가집단의 주관평가를 통해 임용이 이루어지기에 선별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논문 수가 많은 사람을 뽑고, 왜 잘 가르치는 교수, 인성이 훌륭한 교수를 기대하는가. 소수 집단에 충성할 사람을 뽑으면서, 훌륭한 연구자가 되기를 기대하는가.

창의적인 연구자를 육성하고 싶으면, 연구하는 사람을 교수로 뽑아야 한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일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교육자를 교수로 뽑고 싶으면, 교육 경력을 평가하고, 강의 실력을 평가하면 된다. 좋은 교육자는 졸업한 학부가 SKY가 아닐 수도 있고, 논문이 적을 수도 있다. 혹은 박사학위가 없거나, 박사후 연구원이나 연구원 경력이 없을 수 있다. 행정을 잘하는 교수를 뽑고 싶으면, 지금처럼 뽑으시면 된다. 민주주의에서는 다수가 중요하지, 선악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력 정치인이나 관련자를 초빙하면 학교나 학과에 큰 도움이 된다.

  • 한 때는 창의적인 교수를 꿈꾸었지만, 지금은 교수사회 고령화에라도 기여하고픈 일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