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한글로 쓰면 안되나

한국 대학교수들 영문 저널에 주로 발표... 폐쇄적인 논문 유통구조도 문제 - 주간경향 2016년 5월 25일자 <영어로 논문쓰기, 그들만의 학문> (박송이 기자)

이런 떡밥은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기사에서 제시한 현실 인식은 동의하나, 원인이나 대안은 달리 써보고자 한다. 우선 기사에서 제목과 달리 문제를 2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양질의 논문이 해외 저널(SCI)에 몰린다는 점과 논문 유통의 문제를 언급하였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나 너무 큰 문제라서, 따로 기사를 쓰는 게 어땠을까 싶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첫번째 문제는 논문을 쓰는 이유가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적을 채우기 위해 쓰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두번째 문제는 논문을 만들고, 공유하는 비용을 누가 지불할지의 싸움이라고 본다.

실적은 영어논문 갯수!

우리나라 사회에서 평가는 매우 중요한 관문이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12년간은 대학을 향해서 무수한 시험(평가)을 수행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대기업에 취업하기 위한 수 많은 평가가 기다리고 있다. 학점, 영어점수, 인턴경력, 해외연수경험, 자소서 등. 대학원, 연구원/교수로 이어지는 직업 테크에서는 가장 주요한 평가 기준이 연구 역량. 즉 좋은 논문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로 평가한다. 일견 객관적인 평가 방법으로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좋은'과 '많이'라는 이 평범한 단어에 헛점이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는 '많이'라는 지표에 치중했다. 그래서 교수는 논문 한편을 쓴 다음 여러 학회에 제목이나 글의 일부만 바꾸어 게재하는 관례가 있었다. 살라미 논문(살라미처럼 논문을 잘게 쪼개서 낸다는 의미에서)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연구윤리가 강화되면서(겨우 개념이 정착되면서) 자기표절이라는 이름으로 금기시되어 최근에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그래서 최근 10년동안은 '좋은'논문이라는 데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그런데 좋은 논문이란 걸 평가하기는 쉽지가 않다. 소위 SCIE로 분류되는 학회지만 해도 8,000개가 넘고, 같은 학회지라고 해도, 연구주제가 동일한 것도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내가 쓴 논문과 같은 주제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은 전세계 20-30명 이하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논문 자체의 우열을 가리기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논문을 어느 학회지에 게재되었는지, 잡지의 표지로 판단하게 되었다. 공중파나 주요 신문에 실린 기사는 중요한 기사이고, 지방 신문, 인터넷 매체에 실린 기사는 다소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사라고 인식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좋은 학회지는 인용지수(Impact Factor)라고 불리는 숫자를 이용해서 순위를 매긴다. 일정기간동안 해당 논문집에 실린 논문이 인용된 횟수를 총 논문 편수로 나눈 수치로, 논문 1편의 평균 인용횟수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인용이 많이 될수록 좋은 논문이라는 논리다. 그럴 듯한 논리다.

여기에 동의하면, 이제 한글로 논문 쓰기는 물건너 가는거다. 전세계 한글을 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70억 중 기껏해야 7천만. 1%다. 영어는? (비록 중국어, 스페인어에 이어 3등 언어이긴 해도, 전세계 통용어로 영어가 사용된다는 점을 상기하자.) 한글로 쓰여진 논문은 인용되기 어렵다. 그리고 한국학회는 인용지수같은 것도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SCIE와 동일하게 평가하지도 않을 것이다.

20년 전에는 영어논문 1편 = 한글논문 2편으로 평가를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SCI, SCIE, SCOPUS인지 아닌지. 그리고 SCI더라도 동일 분야에서 몇등하는 논문집인지까지 비교해서 차등해서 평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체감상 SCI 1편은 한글 논문 10편 이상의 가치를 갖는다. 아니, 한글 논문은 영어논문의 1/10 가치도 안되게 되었다라고 하는 편이 더 적확하겠다.

우리는 이러한 평가 기준을 석사 졸업, 박사졸업, 포닥 혹은 연구원 취업, 교수 임용, 교수 승진 시점에 활용한다. 각 관문마다 실적이 필요하고, 취업스펙이 상향평준화되듯, 연구성과 역시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석사 졸업은 한글논문 2편이상, 박사졸업은 SCIE 1편, 한글 논문 2편이상, 포닥은 SCIE 2편 이상, 교수 임용 시 SCIE 5편 이상, 교수 승진 시 SCIE 5편이상 이런 식이다.(숫자는 분야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숫자가 커지고 있다는 경향성은 같다고 생각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연구자는 실적을 효율적으로 채울 수 있는 전략을 수립하게 된다. 스스로 좋은 연구라고 생각하는 연구결과는 무조건 SCI로 간다. 연구 결과가 다소 모자라거나, 학부, 석사 과정 수준에서 쓴 논문은 한글 논문으로 간다.

결국 한글 논문은 석사수준의 논문으로 가득차고, 석사수준의 논문으로 가득찬 한글 논문집은 아무도 보지 않는다.

논문 유통 문제는 누가 돈을 지불하느냐의 문제

논문 시장에 관해서는 '민간업체에서 논문을 돈 받고 판다. 대안으로 Open Access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로 서술하고 있다. 논문 출판/유통을 위해서는 돈이 들고, 이 돈을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문제이다.

  • 저자가 소정의 심사료/출판료를 내고, 학회는 회원들에게 제공한다. 연회비를 내면 학회 내 모든 논문을 읽을 수 있다.
  • 저자는 돈을 쓰지 않고, 전문 업체에서 출판/판매를 대행하는 조건으로 비용을 부담하고 대부분의 수익을 차지한다. (SCI)
  • 저자가 돈을 내고, 누구나 공짜로 읽는다. (Open Access)

첫번째 타입은 저자는 논문 출판을 위해 10-30만원 정도를 부담하고, 독자는 해당학회 연회비로 5-10만원 정도를 부담하면 해당 학회 논문을 읽을 수 있다. 개별 학회단위에서 관리되므로, 전체적인 효율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두번째 타입은 저자 부담은 0, 독자는 편당 수 만원을 지불해야 하고, 기사에 나온 것처럼 서울대(도서관에서 비용부담)라면 대부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전문출판기업에서 관리하므로 개별학회에 비해서 효율적이다. 논문에 들어갈 그림을 대신 그려주기도 하고, 인용하고 있는 논문들끼리 링크를 걸어주고, 논문 출판의 품질이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저자 입장에서는 최선이나, 독자 입장에선 자신이 어느 기관에 소속되어있는지에 따라 극과 극으로 갈린다.

세번째 타입은 저자가 100-200만원을 부담하는 대신, 누구나 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다. 독자 입장에선 최선이나 저자 입장에선 비용 부담이 크다. 저자는 비용을 상쇄할 수 있는 메리트를 찾게 되는데, 빠른 심사/높은 확률의 심사통과/SCIE등재가 주된 장점으로 인식된다.

기사에서 Open Access가 좋은 대안처럼 기술하였지만, 저자가 비용을 부담하는 대신 빠른 게재을 기대하는 점과 학회/출판업체 입장에서 논문을 많이 게재할수록(많이 보는지와 상관없다) 수익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적절한 심사과정없이 논문이 게재되는 부작용이 있다. 읽히는 논문을 판매하는 수익모델을 읽힐만한 좋은 논문을 찍어내는 것이 중요하지만, 출판권을 판매하는 수익모델은 많은 저자가 빨리/많이 논문을 써내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성과에 대하여 양적 평가를 실시하는 우리나라 현실과 결합되면서 부작용이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국가과학기술정보센터(NDSL, http://ndsl.kr)에서 무료로 논문을 읽을 수 있으나, 기사에서 언급된 업체(DBpia로 추정)와의 저작권 관계는 잘 모르겠다. DBpia에서만 검색되는 논문이 있는가 하면, DBpia에서 돈 받고 팔고 있는데, ndsl에서 무료로 받아지는 논문도 있다.

결론은 돈이 걸린 문제라 누가 맞고 틀리고를 따지기가 쉽지 않다.

우리말로 연구하자

이 거대한 문제의 해결법이 있을까. 좋은 논문은 영어논문으로 쓰이게 되고, 영어권 사람들에게 읽히는 논문이니까 연구 대상도 미국 혹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게 된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생각을 온전히 논문에 담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일본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모국어로 연구하는 풍토를 꼽는 사람도 있다.

앞서 기술한 것처럼 실적을 채우기 위해서 논문을 쓰는 풍토가 지속되는 한 이 문제의 해결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국어보다 모국어로 글을 더 잘 쓸 수 있고, 더 쉽게 쓸 수 있다.(안 그러신 '분'도 있는 것 같더라만)

논문을 쓸 때면, 내 전공에 도움 안 되는 많은 재미있는 생각들이 스쳐지나가곤 한다. 이런 생각들 한글 논문으로 써보면 어떨까. 개인적으로 일면식은 없지만, 장혜식님이 쓴 <터미널엔 롯데리아, 동네에 맥도날드, 강남에 버거킹..?> 이란 글은 좋은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약간의 부연설명을 하자면, 소위 BT 분야에서 세계적 수준의 실적을 보여주시는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님 연구실의 주요 멤버이면서, 연구실 홈페이지에는 '연구조교수'로 기술되어있다. 당연히 엄청 대단한 학술지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 당연하게도 한글 논문을 쓸리가 없다. SCI 탑클래스에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데, 한글 논문을 쓸 이유가 있겠는가.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정기학술대회 는 왜 영어로 발표했던걸까. 36명 발표자 중 외국인 발표자는 7명뿐인데...)

하지만 블로그에 쓴 글 같은 경우는, 비록 논문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왠만한 논문보다 잘 정리했다고 본다. 저걸 SCI로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을 잘 분석했고, 재미있지 않은가. 100번은 인용될 수 있는 연구결과라고 본다. 이왕 망한 거면 못쓴 고리타분한 논문보다 잘 쓰고 재미있는 논문같지 않은 연구를 논문으로 써보는 건 어떨까.

답이 없는 문제지만, 나는 이런 엉뚱한 걸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한가?


댓글

sungyong2 Jan. 23, 2017, 3:19 p.m.

측정할 수 있는 실적(=논문)보다 자기만족에 가까울 수 있는 블로그에 의미를 느끼고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